글자 없는 그림책의 매력
와이스토리 연구원 고현주
그림책의 주인공은 그림이다. 글자는 그림책의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역할을 할 뿐이다. 글자는 조연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그림책은 주연인 그림만 출연하기도 한다. 조연은 아예 출연 자체를 하지 않거나 한 두 컷에만 등장하고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글자가 주연 역할을 하고 그림이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그림동화와는 사뭇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만으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잘 전달될 수 있을까? 활자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글자 없는 그림책은 그림만으로도 다양한 해석의 의미 전달이 가능하며 그림의 순서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책이 탄생하기도 한다. 글자 없는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져 보자.
1997년 현암사에서 출간된 니콜라이 포포프의 ‘왜?’라는 그림책은 대표적인 글자 없는 그림책이다.

니콜라이 포포프는 실제 전쟁을 경험한 작가이기도 하다. 제2차 대전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경험한 바를 고스란히 그림책으로 표현하였다. 전쟁 무기에 대한 지식이 없던 시절 니콜라이의 친구는 대포인 줄도 모르고 공을 찼다가 다리를 잃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이든지 즐거움으로 가득한 아이들에게 전쟁은 얼마나 잔인한 기억을 심어주었는지 작가의 말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왜?’라는 그림책의 내용은 너무나 단순하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두 주인공은 갈등을 겪다가 점점 더 큰 전쟁을 벌이게 된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말이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면의 들판은 초록의 평화가 가득하다. 이야기가 끝이 난 장면은 모든 것이 폐허가 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들판에 함께 살았을 생물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런 잘못도 없이,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들판의 식구들의 삶은 어찌해야 하는가. 그림책은 아무런 글자도 없이 그림만으로 충분히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그림책은 앞으로 한 번, 뒤로 한 번 읽어보는 것도 큰 매력이다. 폐허가 된 곳에서 출발하여 모든 것이 회복되는 과정으로 되짚어가며 그림책을 읽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다.
글자 없는 그림책의 대표적인 작가에는 미국 출신의 데이비드 위즈너가 있다.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작가이다. 대표작에는 ‘1999년 6월 29일, 이상한 화요일, 구름 공항’ 등이 있다. 올해는 국내의 한 미술전시관에서 데이비드 위즈너 원화 등을 전시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하였다. 그만큼 데이비드 위즈너가 국내에 친숙한 작가임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데이비드 위즈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림책 안에 등장시키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이상한 화요일’에도 데이비드 위즈너가 등장하는데,
늦은 밤 야식을 즐기는 마을 주민이 바로 작가의 모습이다. 실제 작가의 모습을 검색하여 비교해보면 꽤 비슷하게 자신의 모습을 그려두었음을 알 수 있다.


글자 없는 그림책의 매력은 무엇보다 해석의 자유로움에 있다. 그림을 읽어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그림책이 탄생될 수 있다. 또한 그림의 순서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되기도 한다. OHP 필름지 등을 이용하여 그림책 위에 용지를 올리고, 그림을 따라 그리고 필요하다면 기존 그림에 변화를 준다던지 글자를 가미하면 작가의 작품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그림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국내 작가들 중에도 글자 없는 그림책을 만든 작가가 있다. 이재희 작가의 그림책 ‘어디에 있을까?’ 두 그중 한 작품이다. 사실 이재희 작가의 ‘어디에 있을까?’는 글자가 있는 장면과 글자 없이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장면이 있어 글자 없는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도 있다. 다만 뚜렷한 줄거리를 설명하지 않고 한 폭의 그림 위에 간단한 하나의 의성어, 의태어만으로 장면을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 전체 그림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소개해 본다. 글자가 가미된 장면은 글자가 없는 장면에 대한 상상을 끌어내기 위한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재희 작가의 책은 잃어버림과 그에 대한 기억에 관한 책이다. 소중한 기억이 담긴 물건들의 행방을 묻는 장면과 그 물건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가미된 장면이 차례로 제시되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연필, 지우개 등의 학용품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물건들이 어디에 있을지 작가는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그림만으로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 보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렸을 물건들이 다른 대상에게는 전혀 다른 쓰임으로 재미있게 쓰일 수 있음을 그림만으로 잔잔하게 전하고 있다.
글자 없는 그림책은 활자에 지친 우리들에게 위안을 준다. 그림을 살펴보며 숨은 그림을 발견하는 재미를 누려보는 것도 글자 없는 그림책을 접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그림책의 주인공인 그림이 톡톡히 주연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이 어떨까.

글쓴이 고현주는 청주에 살고 있다. 어느새 중학생이 된 큰 아이를 키우다 그림책에 푹 빠져 지낸 지 십년이 넘었다. 그림책 관련 책을 낼 정도로 그림책에 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그림책으로 더 행복해질 세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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